Misdelivered Letter
잘못된 편지
2024-ongoing
The Misdelivered Letter addresses domestic violence. I grew up in a dysfunctional family, subjected to my father’s abuse since childhood. In 2022, I stopped avoiding his fists. A bruise blooming on my eyelid became the first blueprint of this work. But as I focused on physical wounds, I confronted a limitation—how easily such work could fall into self-pity and depression. I began searching for a more delicate approach, one that could evoke shared memory instead.
So I turned to my mother’s story. She endured the same violence alongside me, and at the same time, she was the reason I couldn’t leave. Knowing she had no family of her own, I understood that my leaving would mean abandoning her in pain. I felt guilty for wanting to escape. Caught in a tangle of conflicted emotions between her and me, I flailed for a long time before I chose literature and photography as my tools of resistance. To live through reality while still speaking out—this artistic act became a kind of compromise. I couldn’t leave, not yet. But I had to speak.
This project offers an alternative perspective on survival. Rather than legal retaliation or physical revenge, I chose quiet—perhaps passive, perhaps hesitant—ways of protecting and revealing. Is this weak, even foolish? Will this work remain unresolved as long as the violence continues? Where does healing begin? I continue to ask. And like the dull ache that lingers in my cheek, I remain uncertain of the ending.
Misdelivered Letter 연작은 가정폭력에 관한 이야기다. 역기능 가정에서 성장한 나는 어린 시절부터 아빠로부터 학대를 당해왔다. 2022년 아빠의 주먹을 피하지 않았던 나는 눈두덩이에 든 멍을 청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물리적 상처에 주목한 작업이 자기연민과 우울에 빠지기 쉽다는 한계를 마주하면서, 이 문제를 더 섬세한 방식, 즉 공유된 기억으로 불러오기 위해 고민했다.
그리하여 나는 엄마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엄마는 이 폭력을 함께 감당해온 주체인 동시에 내가 집을 떠날 수 없게 만드는 이유였다. 그녀 스스로에게 가족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내게 집을 떠난다는 일은 곧, 한 사람을 고통 가운데 버려두는 것이었다. 나는 집을 떠나는 데 죄책감을 느꼈다. 나와 엄마를 잇는 불편한 양가 감정 사이에서 한참을 허우적대던 나는 이내 문학과 사진을 투쟁 수단으로 선택했다. 현실을 살아내되 목소리를 내겠다는 예술적 행동은 일종의 타협과도 같았다. 현실적으로 집을 떠날 수 없었지만, 나는 말해야 했다.
이 작업은 생존에 대한 대안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법적 대응이나 물리적 복수가 아니라 소리 없는—어쩌면 소극적이고 수동적인—자기 보호와 고발의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이것은 힘 없고 바보 같은 짓인가? 폭력이 끝나지 않는 한 이 작업은 맺어지지 않을 것인가? 치유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나는 여전히 질문한다. 그리고 뺨에 어린 통증이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나는 끝을 확신할 수 없었다.
The Seoulitium, Seoul, Nov 29-Dec 2,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