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and Hate
간판수집
2020-ongoing




I am the daughter of a signmaker. My father has crafted signs for forty years. When he measured storefronts, I would sit in the passenger seat of his white Porter truck, watching him climb the ladder. As I grew older, I helped peel letters from vinyl sheets, following the knife-cut lines. To me, signboards were familiar, an extension of my childhood.

Naming something is an act of love. My father took pride in selecting fonts, choosing colors, and drawing illustrations. Whenever we traveled to unfamiliar neighborhoods, his signs would greet us. He loved his craft. But that love was not universally shared. While we tried to read the care embedded in every sign, others looked at them with indifference—or even disdain. I understood why people disliked the clutter of Korean signboards, yet a part of me felt slighted.

Since 2012, South Korea has invested heavily in signboard improvement projects, allocating 4 to 6 billion won annually to replace existing signage. Rapid urbanization brought an explosion of businesses, and with them, a surge in unauthorized signs. Defying outdoor advertising laws, layers of vivid, mismatched letters filled every wall, becoming an inseparable part of the country's landscape. The demand for eye-catching signs, built not for harmony but for visibility, speaks to the competition and self-interest ingrained in our society.

Signmakers no longer wield brushes but welding torches. Old signs come down, new ones go up. I once wondered who would craft signs when my father grew too old to work. It was a needless worry. Time moves forward, generations replace each other, and outdated signs are inevitably replaced by sleeker, more polished ones. The signs my father made—perhaps awkward, rough, or unrefined—will be taken down. Even the “bad” signs will disappear.

Love often moves in misaligned directions. My father loved letters, but the world looked down on signmakers. My documentation of these signs is both an attempt to archive what remains and a way to hold onto my memories. As I read each sign, I think of my father. I recall the good days we shared. These signboards were the only letters we exchanged. Soon, the faded, sun-bleached panels will vanish, their letters torn away. And so, I collect this clumsy, one-sided love—relentlessly, stubbornly, foolishly.



나는 간판집 딸내미다. 아버지는 40년 동안 간판을 만들었다. 그가 간판 크기를 재러 다닐 때면 나는 흰색 포터 조수석에 앉아 사다리에 오른 아빠를 바라보곤 했다. 조금 더 자라서는 시트지에 난 칼선을 따라 글자 떼는 일을 도왔다. 나에게 간판이란 익숙한 것이었다.

이름을 짓는 일에는 사랑이 따라온다. 아빠는 서체를 고르고 색깔을 결정하는 일, 삽화를 그리는 일에 자부심을 느꼈다. 먼 동네를 여행할 때마다 아빠의 간판들과 마주했다. 아빠는 간판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 사랑이 누구에게나 유효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간판 위에 새겨진 사랑을 읽어내려 애썼지만,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은 크고 복잡한 한국 간판에 무관심하거나 때로는 그것을 무척 싫어하는 티를 냈다. 간판이 미움받는 이유에 공감하면서도 어쩐지 섭섭했다.

우리나라는 2012년부터 큰돈을 들여 간판개선사업에 착수했다. 매년 40-60억 원이 거리의 간판을 바꾸는 일에 사용된다. 급격한 도시화로 건물과 가게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간판의 개수가 매섭게 늘어났는데, 이 과정에서 불법 간판 역시 급증했다. 옥외광고물 법률을 무시하고 벽면을 빼곡히 채운 형형색색의 간판은 대한민국의 풍경이 된 것이다. 조화나 아름다움 대신 ‘남들보다’ 눈에 띄는 간판에 대한 수요는 우리 사회의 경쟁과 이기심을 증명한다.

간판장이는 붓 대신 용접기를 들었다. 헌 간판은 내려가고 새 간판이 올라간다. 아빠가 나이 들면 그때는 누가 새 간판을 만드나, 고민하던 날도 있었다. 무용한 걱정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세대는 교체되고, 촌스러운 간판은 세련된 것으로 대체될 것이다. 나의 아버지가 만들었던, 어쩌면 못생기고 무식한 간판들이 이제는 떼어지고 말 것이다. 심지어 ‘나쁜’ 간판들까지도.

사랑의 방향은 자주 어긋난다. 아빠는 글자를 사랑했지만, 세상은 간판장이를 미워했다. 간판수집은 오늘날 남아 있는 낡은 간판을 기록하려는 시도인 한편 나의 기억을 붙잡아 두려는 작업이다. 간판을 읽으며 아빠를 생각한다. 아빠와의 좋았던 날들을 떠올린다. 간판은 우리를 이어주는 유일한 서신이었다. 햇빛에 바래 누레지고 뜯어진 네모난 파나플렉스 간판에 새겨진 글자들도 얼마 뒤면 잊히고 말 테니, 나는 그 촌스럽고 일방적인 사랑을 미련하게 수집할 뿐이다.